이번 주말에 속초에 다녀왔어요!
근데 이상하죠?
분명 이번 토요일에는 비가 왔는데?
비가 오는 가운데 거치대에서 핸드폰을 빼는 제 모습입니다
때는 토요일 오후, 비가 추적추적 왔지만 저희는 감히 "바리"라는 장대한 계획?을 즉흥?적으로 세우게 됩니다.
: 바리갈까?
: 비오는데?
: 비 맞으면서 타는 바이크도 나름 운치있고 좋아
: 흠...
저는 이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혹시 모르죠 진짜 제가 모르는 운치가 있을지? 그래서 저희는 천천히 하지만 단단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막상 나가려고 보니 빗줄기가 꽤나 굵더라구요.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나...?'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죠. 그냥 박스 달고 짐 넣고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을 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비가 점점 거세지네요. 바닥은 이미 축축해지다 못해 물웅덩이가 넓게 생겼고, 장갑은 어느새 푹 젖어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한테 물벼락을 한 3번은 맞은 것 같아요. 맞을때마다 욕이 앞니까지 튀어나왔는데... 저녁도 먹지 않고 출발한 가운데 항상 지나는 편의점에서 저녁도 먹을 겸 재정비를 하고 가기로 했죠. 그 순간이 위 사진입니다. 겉에 입은 옷은 비옷이에요
이번 바리의 첫 끼 <신라면 더 레드>
이 때 저희는 갈등을 하기 시작합니다. 속초에 숙소도 예약을 한 마당에 여기서 발길을 돌릴까 아니면 계속 강행할까. 놋찌는 저의 즐거움을 우선하기로 했고, 저는... 일기예보를 봤어요. 내일은 맑더라구요. 오늘 좀 고생을 하더라도 내일 속초에서의 즐거운 라이딩을 기대하며... 강행하기로 합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몇 번 더 쉬었는데, 가는 도중에도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에도 비가 왔다리갔다리 하네요. 엄청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가 하면, 잠잠해질때도 있기도 했고, 속초행 마지막 휴게소에선 달이 보이는 걸 보고 안심하기도 했어요.
이 때 가장 좋았던 점을 들어보자면, 비 맞은 아스팔트 도로에 비치는 빛들이 너무 예뻤어요. 민가나 상가의 빛, 가로등 빛, 내 헤드라이트 빛 등등... 이런 게 아스팔트 결을 따라 퍼지면서 은은하게 빛나더라구요. 그것때문에 차선은 잘 안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조심조심 가니까 어떻게 가지더라구요.
장장 3시간을 더 달린 자정쯤에 저희는 속초에 도착을 했어요. 숙소 앞 편의점에서 미리 먹을 걸 사서 들어가려는데 뒤에 계산하려는 사람이 "아유 춥나봐요 몸을 엄청 떠네"라고 코멘트를 할 정도로 제가 몸을 떨고 있었나봐요. 숙소 사진은 없는데, 싼 가격에 비해서 깔끔했지만 시설이 조금 삐걱거리고 방음이 잘 안되는 느낌이었어요. 하필이면 문 앞에 전자렌지가 있는 바람에 밖에서 먹을 거 데워먹는 소리가 바로 앞처럼 다 들리던... 그리고 창문 손잡이도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드라이기도 모가지가 달랑거리고 수건도 얇아서 그렇게 좋은 수건도 아니었고ㅠ 근데 안에 욕조가 있어서 그 좁은 1인용 욕조 안에 둘이 꾸겨져 들어가서 언 몸을 녹였죠. 정말 극락이 따로 없더라구요.
그렇게 새벽 2시경에 잠을 자고 다음날 9시에 일어났어요. 전날 숙소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 할리 두 대가 서 있는걸 보고 '우리 말고 이 날씨에 속초를 오는 사람이 또 있구나'싶었는데, 날씨 확인할 겸 나왔을 때 할리 두 대는 이미 없더라구요. 역시 바리는 부지런한 사람이 뽕을 뽑는거야... 11시 30분쯤에 체크아웃을 하고 꼭 가고 싶었던 속초의 라이더카페 <이스트7>으로 향했습니다.
라이더들의 스티커로 빽빽히 붙어있는 카페 정문의 모습이에요
이걸 보고 저희도 빨리 스티커를 뽑고 싶어졌어요. 이름하야 <놋치미나 바리단>. 이걸 뽑아서 저희가 가는곳마다 붙이고 다니면 정말 재밌고 뜻깊을거라고 생각해요. 들어가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시네요.
👤 : 오늘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 어... 사실 어제 왔어요
👤 : 네?! 어제 왔다고요? 어제 비 왔잖아요
: 네 비 뚫고 왔어요...
👤: 와...
사장님도 혀를 내두르는 저희의 바리력을 뽐내고 커피를 주문하고 앉습니다. 진동벨이 있길래 가지러 가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장님이 직접 가져다주시더라구요.
뜨아(놋찌), 연유라떼(미나)
아무래도 빈 속이 달리기 편하니까 장거리가 남은 지금 시점에서 뭔가를 먹을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마실 것만 마시고 가기로 했어요. 근데 여기서 좀 쉬었다가 일어나려는데? 놋찌 바이크 뒷바퀴에 스프링이 박힌 걸 보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 징크스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희는 처음 가는 라이더카페에서는 항상 뭔가 트러블이 터져서 어찌저찌 해결하는 징크스가 있어요. 그렇게 브레이크액과 엔진오일과 냉각수를 교체한 전력이 있으며... 그래서 친절하게 배웅해주고 들어가신 사장님을 다시 찾아서
: 사장님... 혹시 지렁이 있어요?
지렁이란?
타이어 펑크를 임시로 수리하는 도구로, 지렁이처럼 생긴 물렁하지만 굵은 고무줄을 펑크 부위에 쑤셔서 타이어를 임시로 막는 역할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카페 뒷편에 개러지가 있어서 컴프레셔 펌프와 지렁이로 펑크를 때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조금 달리니까 껌딱지처럼 달라붙는게 인상적이더라구요. 고마운 사장님을 뒤로 하고 속초를 나섭니다. 가는 길에 미시령 톨게이트를 지나면 도로 옆에 커다란 공간이 있어요. 여기서 항상 사진을 찍는게 저희 관례처럼 내려오고 있어서 오늘도 들어가서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이게 제가 찍은 사진이고,
이게 놋찌가 찍은 사진이에요.
그리고 저희는 양평의 로드러너 카페로 향합니다. 길이 뻥뻥 뚫려있어서 시원시원하게 달렸네요. 날씨도 미시령터널 넘어가자마자 바람까지 따뜻해져서 정말 기분좋게 달렸던 것 같아요. 점심먹으려고 1번, 화장실 가려고 1번 세우고 또 3시간을 달려서 로드러너 카페에 도착합니다.
여기에도 라이더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어요
카페 로드러너는 가깝기도 하고, 저희가 속초를 오갈때마다 들렀던 곳이라 사장님이 제 이름도 외울 정도로 단골인 곳이에요. 그래서 저번에 사진을 한 번 찍히고, 그걸 인화해주기까지 하셨어요.
누가 누구게~요?
이런 사진 받아보는 건 처음이어서, 너무 가슴이 뛰었어요.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이제 정말 라이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놋찌 아니면 바이크라는 건 탈 생각조차 못 했을 거라고, 이런 즐거움은 놋찌 덕분에 알게 됐구나 싶었어요. 또 여기서 먹었던 음료 사진은 없는데, 딸기요거트쉐이크(놋찌), 복숭아아이스티(미나) 였어요.
그리고 또 쉬다가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1시간 가량을 더 달려 집에 도착했어요. 집이 정말 아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이번이 이사를 하고 처음 나가는 장거리 바리인데, 전에 살던 집과는 다르게 복잡한 시내를 몇십 분 동안 빠져나가는 과정이 없으니까 너무 편했어요. 그냥 큰길만 쭉 달리다가 우회전해서 빠져나오면 바로 집이거든요. 앞으로는 장거리 바리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최고의 주말이었어요. 평소 바리대로 시원시원하게 달리는 느낌도 얻었고, 우중바리라는 새로운 즐거움도 느꼈어요. 그리고 이런 순간들에 놋찌와 함께 있다는게 축복처럼 느껴지는 주말이었어요.
❤️